인공지능(AI) 서버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전자부품 핵심 소재인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시장이 극심한 수급 불균형에 빠져들고 있다. AI 서버에 필요한 고용량 제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제조사들이 생산 역량을 해당 제품에 집중하게 됐고, 그 여파로 일반 범용 제품까지 공급 부족 현상이 번지는 상황이다.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부품 유통의 중심지로 꼽히는 중국 선전 화창베이 전자시장에서는 최근 MLCC 현물 가격이 수십 분 간격으로 바뀔 만큼 거래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지에서는 “30분마다 새 호가가 나온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 보도에 따르면 MLCC 가격은 3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한 달간 상승 폭이 가장 두드러졌다. AI 서버에 주로 탑재되는 고용량 제품의 경우 납기 기간이 기존 3~6주에서 20주 이상으로 대폭 길어진 사례도 확인됐다.
가격 상승세는 주요 제조사의 제품군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세계 최대 MLCC 기업인 일본 무라타의 고용량 제품 단가는 개당 0.2위안 아래에서 0.65위안 수준으로 세 배 이상 올랐으며, 삼성전기 역시 5월 이후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츠는 글로벌 MLCC 시장이 올해 42억 7,000만 달러에서 2030년 55억 6,000만 달러, 2035년에는 80억 9,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이번 공급난의 근본 원인을 AI가 MLCC 생산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는 데서 찾고 있다. 과거에는 스마트폰·PC 등 소비자 가전이 수요를 이끌었지만, 최근에는 AI 서버와 전기차가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특히 AI 서버는 고성능 GPU, 고대역폭메모리(HBM), 전력관리반도체(PMIC), 네트워크 칩 등이 대량 탑재되기 때문에 일반 서버보다 훨씬 많은 MLCC를 필요로 한다. AI 연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전력 변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용도로도 MLCC 사용량이 늘고 있다.
생산 효율 측면의 구조적 문제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고용량 MLCC는 범용 제품보다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더 오래 걸려 동일한 설비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 적다.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AI용 제품 생산을 늘릴수록 범용 제품의 공급 여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급 불균형이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메리츠증권 양승수 연구원은 이번 가격 상승이 경기 회복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AI 중심으로 MLCC 수요 구조 자체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라고 진단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되는 한 MLCC 수급 불균형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